“반응성 평가절하”, 저사람이 그랬다고?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거야…

평소 껄끄럽게 생각하던 직장 동료가 회의에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내용은 합리적이고 분명 회사에 도움이 될 제안입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저 사람 말이라 왠지 믿음이 안 가”,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며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어설픈 주장을 해도 “분명 깊은 뜻이 있을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죠.

이처럼 내용의 타당성과 상관없이, 그 말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현상. 이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반응성 평가절하(Reactive Devaluation)’입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이 메시지 자체를 평가하는 강력한 필터가 되는 셈입니다.

 

“누가 말했느냐”가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중요한 세상

 

‘반응성 평가절하’라는 개념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리 로스(Lee Ross) 교수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이 편향은 우리가 스스로 매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라고 믿는 착각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이 편향이 특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인지적 지름길: 상대방의 말을 일일이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입니다. 대신 ‘내가 싫어하는 사람 = 그의 주장도 틀렸을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지름길)을 사용해 인지적 노력을 절약하는 것이죠.
  • 갈등의 정당화: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패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따라서 상대의 제안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갈등을 계속 유지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동기가 생깁니다.
  • 신뢰의 부재: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 이면에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분명 나를 이용하려는 속셈이군.”

이러한 반응성 평가절하는 국가 간의 외교 협상 테이블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소한 논쟁, 심지어 가족 간의 말다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온라인 시대, 편 가르기가 만든 심리적 장벽

 

알고리즘과 소셜미디어는 ‘우리 편’과 ‘저쪽 편’을 명확히 가르면서 반응성 평가절하를 극단적으로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1. 정치적 양극화: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은 세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옹호하고, 반대 정당이 내놓은 정책은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일단 비판부터 하고 봅니다. ‘정책의 내용’보다 ‘정당의 이름’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2. 팬덤 문화: 아이돌 팬덤이나 스포츠팀 팬들 사이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그룹이나 팀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는 “언론 플레이”나 “조작”으로 평가절하하고, 우리 편의 작은 실수에는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죠.
  3. 댓글 논쟁: 온라인에서는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이나 닉네임, 과거 행적만 보고도 그 사람의 주장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공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메시지는 사라지고 메신저에 대한 인신공격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색안경을 벗고 ‘내용’을 듣는 연습

 

이 무서운 심리적 필터에서 벗어나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출처 가리고 생각하기: 어떤 주장을 접했을 때, “만약 이 말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악마의 변호인’ 전략이 유용합니다. 출처라는 색안경을 잠시 벗는 연습이죠.
  • ‘사람’과 ‘의견’ 분리하기: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과, 그의 의견이 타당한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의식적으로 인지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싫지만, 이번 의견만큼은 일리가 있네”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공동의 목표 상기하기: 논쟁의 목적이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회사 동료와의 논쟁에서는 ‘회사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상기하는 것이 감정적인 평가절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의 한 스푼]

우리는 메시지의 내용보다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그 가치를 멋대로 깎아내리는 ‘반응성 평가절하’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이 심리적 필터를 인지하고 ‘사람’과 ‘의견’을 분리하여 생각할 때, 비로소 편견 없는 합리적인 판단에 이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