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범죄 사건의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우리는 종종 충격적인 반응과 마주하게 됩니다. “밤늦게 왜 혼자 다녀서…”, “그러게 왜 그런 사람을 만나서…” 분명 가해자가 100% 잘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피해자의 작은 행동을 끄집어내며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며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쉽게 단정 짓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서 “분명 부주의했을 거야”라며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피해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불편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이는 세상을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으로 믿고 싶은 우리의 깊은 욕망에서 비롯된 심리적 방어기제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지 편향을 ‘정의로운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공정해야만 한다는 믿음
‘정의로운 세상 가설’은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Melvin Lerner)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곳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착한 일에는 보상이 따르고, 나쁜 짓에는 벌이 따른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세계관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 믿음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내가 규칙을 잘 지키고 선하게 살면, 불행한 일은 나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죠. 이 믿음 덕분에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계획하고, 사회 시스템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믿음에는 어두운 이면이 존재합니다. 세상이 정의롭다는 전제를 지키기 위해,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왜곡해서 해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이유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이나 부당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의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믿음은 심각하게 흔들립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도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잖아?” 하는 끔찍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죠.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뇌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합니다. 바로 ‘세상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대신, ‘그 불행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 “피해자에게 뭔가 잘못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 저런 일을 당했지.”
- “그러니까 나는 저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않으면 안전할 거야.”
이처럼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사실 그들을 공격하려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나는 너와 다르다’, ‘나는 안전하다’고 되뇌며 어떻게든 나의 ‘정의로운 세상’을 지키려는 처절한 자기방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 유발론’이나 ‘2차 가해’가 발생하는 비극적인 심리적 메커니즘입니다.
공정한 착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로 보려면
‘정의로운 세상 가설’은 우리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차가운 벽을 쌓게 합니다. 이 위험한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 ‘운’의 존재를 인정하기: 세상에는 개인의 노력이나 도덕성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과 ‘불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 피해자의 입장에 감정 이입하기: 성급하게 피해자를 판단하기 전에,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이라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공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제3자의 시선이 아닌, 나의 일처럼 느껴보는 것이죠.
- 시스템의 문제 인식하기: 개인의 불행을 오롯이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그를 둘러싼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불공정한 시스템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한 스푼]
우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은 ‘정의로운 세상 가설’ 때문에, 불행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으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인지 편향을 이해하고 ‘불운’의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